부활하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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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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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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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찾아가는 여인들에게 크나큰 염려와 걱정이 있습니다. 지금 그녀들의 앞에는 그녀들이 어쩔 수 없는 그녀들의 힘으로 벅찬 일, 무덤을 막고 있는 큰 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큰 돌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막고 있는, 내 꿈을 가로막는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그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가서 눈을 들어 보면 이미 돌은 굴려져 있지요. 염려만 하고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고, 가보아야 흰 옷 입은 천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가 보니 그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계속 무덤에 있었다면 그분은 예수님이 아니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아 죽겠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살아나 먼저 갈릴리에 가 있겠다고 이미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려 죽어 장사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무덤이 아닌 갈릴리로 갔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릴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 내가 할 다음 일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일을 했던 곳, 사람들을 고치고,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는 자리지요. 그저 무덤에 머물러 있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는 것, 죽음을 맞지만 거기서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한탄을 하고 향료를 바를 것이 아니라 일어나 내게 맡겨진 그 일을 하는 것이지요. 지금 나는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고 있나요? 나의 오늘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선생님이 죽었다고 무덤으로 찾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분은 갈릴리에 계십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나도 십자가에 달렸지만 사흘 후에는 일어나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복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죽음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십자가에서도 부활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지요.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 있을 자리는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을 무덤에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향료를 들고 죽은 사람 사이에서, 지나간 과거와 추억으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말고 이제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거기서 나의 꿈을 찾고, 나의 삶을 만들어가야겠습니다.그것이 예수님과 같이 부활로 살아가는 사람들, 죽음에서 다시 일어난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내가 믿고 믿지 않고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실 내가 믿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을 리가 없고, 내가 믿는다고 해서 부활하지 않은 예수님이 부활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무덤에 누워있지 않고 갈릴리로 갔듯이 오늘 내가 부활해서 갈릴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가장 큰 효력이고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그처럼 부활해야 합니다. 이제 무덤 속에서 나와야지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지요. 나는 지금 어떤 무덤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는 무덤을 찾아가 무서워 벌벌 떨며 아무 말도 못하는 단계를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어제까지도 함께 놀다가 껍질을 남기고 사라진 굼벵이를 보며 한탄하는 친구 개미와 지렁이가 아니라, 매미가 되어 날라 다니는 친구와 같이 애벌레 고치를 뚫고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께 향료를 바르러 찾아간 여인들은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를 찾고 있는 나의 모습입니다. 아니 무덤에 누워서 한탄하고 원망하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내 모습이지요. 그런 나에게 말씀하 십니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소! 그 소리를 듣고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예수께서 계신 갈릴리로 나아갑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따라 절망의 어둠을 걷고 환한 밝음으로 나아갑니다.
부활을 힘입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