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훈련장이며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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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김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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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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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훈련장이며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시작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의 시작도 이미 하늘에서부터 준비되었고, 또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준비하는 삶이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인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자신감이었고, 겸손함이었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혹시 내가 목사인데, 내가 사장인데, 내가 가장인데, 내가 엄마인데, 내가 선배인데...하는 겉모습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사는 한 행복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며 겉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혹시 내가 이 일을 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남자 체면이 있지. 내 나이가 몇인데..... 혹시 그런 계산을 하고 살지 않으십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매력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답게 해갈 때 힘이 있습니다. 또한 낮은 자리에서도 묵묵히 일할 수 있는 겸손함이 정말 큰 힘입니다. 그런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시작을 보면서 저의 시작도, 여러분의 시작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시작을 위해 사막 한 가운데, 광야로 나가셔야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를 내보내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복음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비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늘 그의 백성들에게 속삭이고 싶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어떻습니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지요. 정말 든든한 백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주시고 곧 바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개역성경에는 광야로 몰아내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랑하는 아들을 광야로 보내시기도 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은혜는 사랑하는 그 아들을 광야로 내몹니다. 광야로 사랑하는 아들을 몰아내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둥지 아래로 밀어뜨리고, 사자가 그 새끼를 낭떠러지에 밀어뜨리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그 훈련을 이겨낸 새끼를 맹수의 왕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자녀가 자기하고 싶은 대로 그저 두지 않습니다. 공부를 시키고 훈련을 시킵니다. 그것이 당장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런 과정을 지나면 그렇게 하는 것이 큰 사랑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일례로 군대에서 훈련을 시킬 때 사병들이 받는 훈련과 하사관이 받는 훈련과 장교가 받는 훈련은 그 질과 강도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사관이 되기 위해, 장교가 되기 위해 혹독한 훈련도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광야는 훈련의 장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이란 광야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과 뜻대로 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이것도 성령님께서 나를 광야로 몰아내어서 더 큰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경험하라고 하시는 사랑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 나의 광야는 어디입니까? 그런 나만의 광야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광야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갈 때에 그냥 하나님이 애굽에서 들어서 가나안으로 옮기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40년간 광야에서 유랑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훈련을 받아야했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세상에 보내어져 70년, 80년을 살아가는 것, 그런 훈련의 때임을 알고 훈련을 잘 받아 성장하는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히 받아야겠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시작을 광야에서 하셨듯이 오늘 우리도 광야의 시간을 지나며 시작,
나의 때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