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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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geum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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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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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하루를 살고, 교회로 모이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말씀을 듣는 까닭도 바로 갈급함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상을 넘어서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물,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우물물을 기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요.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영생의 길은 어디에 있는지, 존재의 의미와 참된 행복과 감격을 누리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물을 마시면 이제 더 이상 갈급할 것도 고민할 것도 답답해할 것도 없습니다. 물을 길으러 우물을 찾아 나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주는 물을 마시면 두 번 다시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되고, 야곱의 우물의 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된다 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는 안에서 밖으로 넘쳐나는 물이고, 다른 하나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물인 까닭입니다. 외부의 것, 바깥의 조건으로 인해서 내가 행복하게 되고 내가 기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변하고 내가 바뀌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남편이 바뀌어야 가정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면 가정이 바뀌고 남편이 달라져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생수를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밖에서 구하지 말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나보다 더욱 나와 가까우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안에 빛과 사랑으로 함께 하신데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하지만 또한 안과 밖이라는 경계 또한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관념과 경계일 뿐 사실로는 그런 것은 없지요. 어디가 안이고 밖이겠습니까? 다 내 생각이 정해 놓은 규정일 뿐 그런 것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내 속에 세계가 있고 세계 속에 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말은 안과 밖에 구분되지 않는 바로 거기, 우리가 ‘하나님의 품’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실재 안에 샘물이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수는 내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넘어서 실재하신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생각, 관념은 있지 않은 허상이지요. 유일하게 있을 수 있는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여인에게 그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있고,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라 일러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목이 마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의 말씀에 귀가 열린 여인은 물을 달라던 예수께 드디어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 몸을 달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거꾸로 당신의 영생하는 몸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몰라도 좋습니다. 다만 속이는 마음이 없이 구원을 간청하는 것, 생수를 구하고 그의 몸을 사모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필요한 것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진실한 목마름, 바로 그것입니다. 돌아봅니다. 정말 구원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까?
진리에 목마르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시라도 아무 것도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